고기집에서 고기 굽는 남자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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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어느 자리든 고기집에 가면 왠만하면 고기 굽는 것을 제가 합니다. 제가 상관이고 고기집에 온 사원이 다 남자라면 제가 굽지 않겠지만 여자 사원이 구워야 할일이 생기면 왠만하면 제가 굽습니다.

물론 집에서도 고기집을 가면 아내는 고기를 굽지 않습니다. 제가 다 굽습니다. 제가 여자가 고기 굽는 것을 못봅니다. 학창시절 여자가 고기를 구우면 안되겠구나 라는 사연 하나가 머리 깊숙히 박히는 바람에 여성분에게는 왠만하면 고기 굽는 것을 시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렇게 가정적이진 않습니다. 전형적인 갱상도 사나이이며 종가집 장손으로서 어릴때 부터 남자는 주방에 들어 가면 안된다고 배웠습니다. 할머니가 절 그렇게 교육 시켰죠. ^^ 근데 이게 요즘 세상엔 딱 이혼 당하기 좋은 조건이죠.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는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가정적이지 못하고 전형적인 무뚝뚝한 갱상도 남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가 고기집에선 여자랑 같이 있으면 반드시 고기를 제가 굽습니다. 학장 시절 어머니와 고기집에서의 사연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갈비


저희집 식구들이 고기 먹는걸 좋아 해서 외식을 하면 주로 갈비집을 잘 갔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그날도 외식을 하기 위해 가족 모두 갈비집으로 향했습니다. 당연히 고기는 어머니가 굽고 있었죠. 그리고 전 먹는데 바빴습니다. 왜 빨리 안구워지나 하고 성질 급하게 기다리고 있었죠. 

그렇게 고기가 구워지고 제가 배부르게 다 먹었을때 쯤 어머니가 "몇인분 더 시킬까?" 라고 묻길래 전 속으로 '배부른데 그만 시켜도 돼겠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시키더군요. 그러면서 어머니 혼잣말로 그러시더군요. "굽는다고 난 하나도 못먹었네..." 라구요. 전 그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가 먹고 있는 동안 어머니가 먹는 모습을 못본거 같았습니다. 아니 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먹는데 바빴으니깐요.

만약 그때 제가 "배부른데 그만 시키자" 라고 했었으면 어머니가 얼마나 실망 하셨겠습니까? 
식구들 먹일려고 당신은 드시지도 못하고 굽기만 했는데 아들이란 녀석이 그런건 안중에도 없고 그만 시키자도 했었으면 어머니가 얼마나 기분 상했겠습니까? 물론... 표현은 안하시겠지만...

전 그 이후론 절대 여자에게 고기 굽는 것을 시키지 않습니다. 

고기집에 가서 고기가 나오면 제 앞에 고기를 놓고 집게를 여자분에겐 주지 않습니다. 제가 여성분과 친해서 그 여성분이 달라고 해도 잘 주지 않습니다. 제가 좀 빨리 먹는 성향도 있고 아무래도 여자보단 구우면서 잘 먹을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제가 구을려고 생각하고 여자분에게 넘기지 않습니다. 여자가 고기를 굽고 있으면 자꾸 그때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여자에게 고기 굽는것을 못시키겠더군요.

회사에서 제가 상관 일때는 여직원이 저의 고기 굽는것을 보고 살짝 불편해 하기도 하는데 저의 이런 사연을 말하고 괜찮으니깐 편히 먹으라고 말합니다.

아내랑 연애 할때도 이런 저의 모습이 좋았다고 하더군요. 그 덕에 점수를 많이 얻었습니다. 그래서 가사일도 잘 할줄 알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러질 않아서 속았다고 푸념을 합니다. 고기 굽는거 말고는 하나도 할줄 모르니... ㅋㅋㅋ